: 컴퓨터와 외장하드가 바뀔 때마다 삭제되지 않고 살아남는 폴더가 있다. 폴더명은 ‘소설의 조각들’.
그때그때 떠오른 문장이나 장면을 무작위로 써놓는 저장고 같은 곳이다. 문장 수로 따지면 방대한 양이지만, 실제 쓸모 있는 문장은 몇 개 없다. ‘소설의 조각들’만큼 오랜 시간을 따라다닌 다른 폴더는 ‘마감 중 조각들’이다. 자발적인 마감이 아닌 누군가 정해준 마감을 지켜야 하는 직업인으로써 나는 언제나 마감 중이었고, 마감 중에 생기는 단편의 일들을 작성해놓은 것이다. 길을 가다 마주친 사람의 모습, 버스 안에서 바라본 거리의 모습, 옥상에 죽어있는 백로의 모습, 옆집 할머니의 친목생활 등등. 서로 관련 없어 보이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변에서 일어나고 없어지는 장면을 기록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글 모음이다. 일기를 쓰기에는 번거롭고, 어느 순간은 밀봉된 기억으로 잡아두고 싶을 때 조각 글을 추천한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조각 글을 쓸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