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일지』는 문서진 미술작가가 미국 메인 주의 작은 마을에 한 달간 머무르면서 진행한 작업의 과정을 담은 책이다. 작자는 꽁꽁 얼어붙은 겨울 호수 위에 매일 삽으로 눈을 쌓아올려, 봄이면 사라질 일시적 섬을 만들기 시작한다. 영하의 기온 속에 섬의 면적이 점점 불어날수록 그 무게로 인해 호수의 표면이 깨져 물에 빠질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커진다. 하지만 작가는 삽질을 계속한다. 자신이 이 작업을 왜 수행하는지 모르는 채로, 호수가 들려줄 대답을 기다리면서. 그 느리고 고요한 시간이 쌓여 무용하고도 아름다운 삽질의 기록이 되었다.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눈 결정이 매일 조금씩 다르다. 오늘 온 눈은 육각형의 별 같은 결정이 아니라 옆으로 길게 찢어진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매일 보는 눈이 모양새도, 맛도, 냄새도, 촉감도 다 다르다. 하루가 무섭게 간다. 호수에 나가 일하고 있으면 금세 해가 진다. 삶이 단순하다. 내일도 호수님이 무사하시기를, 그리고 나도 무사하기를 바란다. (23쪽)
하양을 한 삽 떠다가 다른 하양 위에 놓는다. 하양을 쌓는다. 하얗고 하얗고 하얗다. 온통 하얘서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저번엔 한 동료 작가가 내게 물었다. 봄이 되어 이 섬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냐고. 잘 모르겠다. 이 섬의 마지막을 보고 싶은 것인지 아닌지. 이 섬은 또한 필멸의 존재이다. 그리고 봄이 되면 죽을 것이다. 알 수 없는 그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섬을 나는 보고 싶은 걸까, 보고 싶지 않은 걸까. 그것을 본다면 내 마음은 어떨까,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또 어떤 마음일까. (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