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부모를 잃고 위탁 가정이나 쉼터에서 자라는 아이들, 자립준비청년. 만 18살이 되어 보호가 종료되면 떠나야 하는 가정과 식구들, 잠시 ‘빌려 쓰는 가족’ 틈에서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과 내가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먹는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삶, 곁에 아무도 없는 삶을 묵묵히 살아오며 자신과 치열하게 싸워온 한 자립준비청년의 이야기이다. 때로는 상상할 수 없이 아픈 삶 그러나 꿈을 향해 나아가길 잊지 않는 여정이 펼쳐진다. 언제나 이방인으로 살아왔지만, 척박한 세상에 지지 않고, 삐뚤어지지도 않고, 모든 것을 품는 바다처럼 살아가는 한 자립준비청년의 말들을 숨김없이 담았다.
책 속에서
스무 살에, 위탁 가정에서 야반도주했다. 당시 나는 물에 젖은 종이와도 같아서 조금의 비난만 들어도 금세 찢어질 것 같았다. 위탁 가족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모두가 잠든 밤에 떠나기로 했다. 그 집에서 10년쯤 생활한 짐은 큰 가방 하나와 보따리 두 개가 전부였다. 끼익, 소리 나는 문을 숨을 참고 열었다. 발끝으로 계단을 조용히 걸어 나가 동네를 벗어날 때까지 내달렸다. 심장이 아프게 쿵쾅거렸다. 나의 청소년기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 9~10쪽
자립준비청년 친구들은 위탁 가정에서 분리되는 순간부터 포기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놀러 가고 싶은 마음. 무엇도 바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배운다. 그리고 조금씩 꿈꾸는 법을 잊어버린다. 먼저 자립한 선배들의 끔찍한 생활,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망가져 가는 언니, 누나들, 자립정착금을 사기당한 형들, 도박이나 불법적인 일에 휘말려 위기에 놓인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불안함이 밀려온다. 나이를 한 살 먹는다는 것은 이들에게 축하받을 일이 아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으로 내몰리게 되는 두려운 시기가 점점 다가오는 것이다. 퇴소가 가까워져 올수록 아이들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