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연필을 직접 만들 수 있다면, 저 잎사귀의 초록색을 찾아 온갖 색연필을 뒤적이지 않아도 되겠지. 견고한 삼나무를 갓 쪄내어 말랑말랑할 때 얇게 썰어, 김밥 말듯 색연필 심을 돌돌 말아 송송 써는 거야. 오늘의 김밥처럼 오늘의 색연필 한 움큼 쥐고 작업실로 향하는 길이 소풍 같겠지. 아니면 보자기에 곱게 싸서 이른 아침 지하철역에 앉아 ‘여러분 방금 만든 따끈한 색연필 말이에요. 색깔이 맛깔나요. 청금석 맛, 세화해변 클로버 맛, 여름 풀장 맛, 간밤의 일기를 비추던 노랑 불빛 맛…’ 빈속을 칠해줄 든든한 맛이에요. 저의 원료 상자에 차곡차곡 모아둔 영롱하고 맑은 빛깔들이에요.
#3 매일의 열린 문
매일의 출근길, 매일 흐르는 물, 사람, 새.
작은 마트와 공원을 지나 연남과 가좌를 가르는 사거리에서 사천교 밑으로 홍제천 천변의 길.이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나의 작업실이고, 더 올라가면 세검정따라 북한산까지 다다를 것이다.